마지막이 되는 걸 좋아하는 사카구치의 신작. 쾌적함 만을 놓고 보자면 최근 몇년 사이에 나왔던 일본 RPG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스트스토리는 사카구치의 게임이며 미스트워커의 게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닌텐도가 프로듀스한 게임이라는 인상도 강했다. 제노블레이드와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드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 할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인상을 주던 게 제노블레이드였다면, 라스트스토리는 그보다는 절제된 느낌. 스토리를 진행해갈 때마다 새로운 요소들이 생겨나긴 하지만, 무작정 할 일을 가득 뿌려주는 식의 게임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최근 게임들은 이런저런 할 수 있는 퀘스트들을 목록으로 따로 관리할 수 있게하여, 마련해둔 것들을 최대한 즐기도록 유도하는 편이다. 그에 비해 이 게임은 이런저런 컬렉션 요소들에 대한 인터페이스를 삭제하는 것으로 쾌적함을 더해주었다. 빈 칸 채우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어그로를 끌어와서 동료 캐릭터들이 제대로 활약할 수 있게 유도하는 스타일의 전투 시스템도 제법 쾌적하다. 다소 원패턴으로 흘러가는 경향도 있지만, 일반 필드 전투의 난이도를 낮추어서 쾌적함을 더하고, 대신 보스 전에 전술을 집중하는 형태로 밸런스가 잘 잡혀있다. 주인공은 어그로를 끌어오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탱커가 되어 적의 공격을 받아주는 방식도 아니다. 무작정 돌격하는 걸로도 적을 잡을 수는 있지만, 효과적인 전략으로 적들을 제압하면 경험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것도 강점. 전투를 할 때마다 레벨이 올라가는 것 같은 감각도 제법 상쾌하다.

어딘가 모르게 퇴물 이미지가 더 강해진 사카구치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의도한 대로 게임을 잘 만들어내는 개발자이기도 하다. 시스템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전형적인 오래된 일본 RPG 스타일인 블루드래곤이라던가 로스트 오딧세이 덕분에 구시대 개발자라는 인상을 주었지만, 그쪽은 오히려 일본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XBOX에 가장 부족한 것이, 전형적인 스타일의 RPG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잘못된 방향 선정이랄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사카구치는 MS가 요구하는 스타일의 게임을 잘 만들어냈다. XBOX360의 HD 스펙을 잘 살린 좋은 그래픽을 갖춘 전형적인 감각의 RPG.

닌텐도와 손잡고 Wii로 신작을 낸다고 발표했을 때엔, 여전히 시스템의 변화없는 전형적인 타이틀을 내놓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았겠지만, 트렌드에 밀리지 않는 요즘 RPG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 게임의 아쉬운 부분이라면, Wii로 이 게임이 나왔다는 점이랄까(물론 닌텐도 프로듀스의 힘으로 보다 안정적인 완성도를 갖춘 게임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좋은 비주얼을 보여주기위해 상당히 무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딱히 그래픽이 좋아보이지 않기 때문. 제노블레이드에 비해서도 그래픽에서는 나은 모습을 찾기가 힘든데, 그래픽 스펙 좋은 기기에서라면 어떠했을까 싶기도. 여전히 마인드잭 같은 엄한 게임을 만들어내는 필플러스와 합작을 해도 로스트 오딧세이 같은 비주얼을 뽑아냈었으며, 고스트바이브레이션 같은 게임을 만들었고, 이후 뱀파이어 레인 같은 괴작을 만든 아툰과 합작을 해도 블루드래곤 같은 비주얼을 보여줄 수 있는 개발자였다.

여전히 전통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노는 게임이란 인상도 주긴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의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