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닌텐도가 참여하지 않는 행사인 도쿄게임쇼에서 SCEI는 플랫폼홀더로서, 혹은 트랜드를 제시하는이끌어가지는 못하는개발사로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코나미가 CESA를 이끌 때에는 도쿄게임쇼에서 코나미 부스가 유난히 거대하여, 코나미가 이끌어가는 쇼라는 느낌을 많이 전해주기도 했지만, 코나미는 그런 물량공세에 비해서는 그렇게 실속을 차리는 편은 아니었다. 특별히,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물량으로 회사 자체의 거대함을 알리려는 데에 주력했다고 하면 될까.

그런 것에 비해, SCEI의 경우는 항상 새로운 트렌드를 제안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트렌드 리더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었기에, 코나미 정도로 물량공세를 펼치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적인 밀어주기가 돋보였다.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이랄까.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자리 매김을 하기 위한 전략이랄까. 그들은 언제나, 컨셉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에 주력했다. 규모도 크긴 했지만, 단지 크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어필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쿄게임쇼에서의 SCEI 부스는 그들이 무엇을 밀고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그 해의 트렌드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예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들의 1년은 도쿄게임쇼에서 어느 정도는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니까.

2003년 도쿄게임쇼에서 그들이 내세운 것은 NETWORK였다. 이미 그 시점에서 완전한 정착 단계에 있던 스퀘어에닉스의 FF11과는 달리, 정착시켰다고 보기엔 다소 미묘한 모두의 골프 온라인이라던가, SOCOM(미국 시장은 여기에선 논외일 수 밖에 없다)만으로는, 그들이 트렌드 리더가 될 수 없었다. 셋탑박스로서의 역할을 주도하려 했던 BB navigator의 새로운 역할 같은 것들은 모두 허상이기도 했었다. (스퀘어 에닉스의 Playonline 같은 경우도 초기에 그들이 제안한 노선은 대부분 접혔으며, 게임, 그나마도 FF11 정도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한 다양한 활동을 PS2를 통해 즐긴다는 것 자체는 그다지 좋은 성과를 올리진 못했다. 차라리 드림캐스트의 초기가 더 나았을 정도니까)

SCEI, 그들이 주도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BB Unit을 이용한 각종 전략은, 그들이 BB Unit을 내놓았기 때문에라도 일종의 성과를 보여줘야만 했었다. 플랫폼 홀더로서, 최소안의 룰, 혹은 문화를 만들어 줘야만 했었다. FF11이 아닌, PSBB의 세계를.

그렇기에, 2003년 도쿄게임쇼에서 SCEI는 네트워크를 전면에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 킬러타이틀인 GT4의 온라인 지원설을 흘려보기도 하고, BB Unit을 활용하기도 하는 미묘한 소프트웨어인 곰의 노래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각종 저가판 온라인 지원 보드게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2003년의 도쿄게임쇼는 바이오해저드 아웃브레이크, 몬스터 헌터라는 걸출한 네트워크 대응 게임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스퀘어 에닉스의 새로운 MMORPG인 앰브로시아 오딧세이, NC SOFT의 공격적인 홍보, 라그나로크 온라인 팬들의 결집까지 어우러져심하게 저조한 분위기의 넥슨 재팬 부스도 있었지만, 2003년 도쿄게임쇼의 모토는 온라인 네트워크라고 봐도 될 정도로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SCEI의 패배다. 트렌드 리더가 되고싶었던 SCEI는 온라인 네트워크 시장에서 만큼은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 주도적으로 그들이 이끌고 싶어했던, 온라인 시장은 SCEI의 것이 아니었다. 온라인 접속자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긴 했지만, 바이오 해저드라는 이름값으로 상당한 판매실적을 올린 바이오 해저드 아웃브레이크, 상당한 고정팬을 확보한 유료 온라인 네트워크 게임 몬스터 헌터를 내놓은 캡컴 만이 그 나름대로의 성과를 올렸을 뿐이다. (FF11은 논외다. 그것들과는 별 상관없이 계속 잘나가고 있는 게임이니까)

그렇기 때문일까? 2004년 도쿄게임쇼에서의 SCEI는 기존의 온라인 네트워크를 버렸다. 그야말로 완전히 배제했다. 이번에 그들이 내세운 것은 PSP. Wired network에서 wireless network로의 체제전환을 노리는 것이다. 새로운 성능의, 새로운 기기를 통한 새로운 생활 패턴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는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방향이다. 고속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게임이 기대보다 빠르게 확산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모바일 기기들이니까. 일본은 ADSL 이상으로 iMODE 등의 모바일 네트워크가 확실하게 구축되어 있기에, 따로 집에서 별도의 PC 등의 기기를 이용하여 email을 주고 받아야 할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거치기기의 온라인 네트워크 이상으로 중요했던 것이 모바일 기기의 온라인 네트워크 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SCEI는 PS2의 네트워크에서 PSP로 중심을 이동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들이 언제나 주장하는 '모두의' 컨셉과 거치형 기기의 온라인 네트워크는 서로 통하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소형 PS2의 발표는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모두의' 컨셉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BB Unit와의 연결 요소를 제외시켰으니. 네트워크는 자유로운 환경의 모바일 기기인 PSP로 집중시키기 위한 SCEI의 전략일 수도 있다. BB Unit을 이용한 사업전개를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BB Unit 동봉 모델의 판매실적도 미묘하고, PSX의 판매실적은 처참했을 정도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할 것 처럼 티만 낸 후에, 접어버리는 그들의 행동은 이번에도 여전했다고 보면 될까. PS3에는 얼마나 그럴 듯한 것들을 많이 심어둘 지, 그게 기대된다.

2004년 도쿄게임쇼에서 SCEI가 내세운 것은 단연 PSP다. 그것을 이용하여 어떠한 트렌드를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 제시가 미묘할 뿐. 그저 기계만 만드는 회사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도 약간은 든다.